오랜만에 마음 편한 사람들과 즐겁고 유쾌한 저녁을 보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귀기울여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때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 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떤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나의 모습에 무엇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아도 될 그 곳에서 나는 매우 큰소리로 아주 많이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이 풍경들과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좋은 느낌들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국민언니로 거듭난 한 남자,
스물여덟인데도 연애 한 번 못해봤다고 불안해하는 한 여자,
곧 식을 올리고 떠날즈음에 첫사랑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한 여자,
그리고, 나.
우리들의 주 이야기는, 연애이야기였다. 국민언니는, 세 여자에게, 그의 꼭꼭 숨겨왔던 그 사랑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내었다. 세 여자는 아주 재밌어하고, 즐거워했다. 웃고 박수치던 세 여자는 때론 짖궂게 굴어보기도 했으나, 국민언니는 연륜에 걸맞게 아주 센스있게 잘 답변해주셨다. 나는 국민언니가 있어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국민언니는 내가 어떤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도 금새 친해져서, 우리 세상에 먼저 뛰어든 선배로써 나의 남자친구를 잘 이끌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나의 어머니 아버지께, 내가 알지 못해도, 종종 안부전화를 드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무척 로맨틱한 일이다. 그런 남자친구라면, 나는 너무나도 고마워서 가위바위보에 몇 번이라도 져 줄 아량을 베풀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고마움을 이기지 못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국민언니는 남자가 사귀자고 할 때는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대답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남자가 사귀자고 하면, 그 남자 앞에서 바로 응,이라고 외쳐버릴 것 같은 난, 그 말을 듣고 깨달음 비슷한 걸 얻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다짐까지 했었을지도?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사귀자는 말을 꺼낸다면,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로 응, 이라고 말해 버릴것 같은, 배알도 없는 생각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여 이 곳에 쓰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너무나 좋았던 그 분위기 속에 기억하지 않을 그 이야기들을 놓아두고 싶다. 넌 내게 반했어의 전주를 너무나 멋들어지게 쳐주었던 기타리스트와 함께, 그리고 치킨과 와플, 많은 사람들과 좋은 사람들, 그 안에 오늘의 아름다운 밤을 담아두고 싶다.
2009/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