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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밤새도록 읽었다. 책장을 덮고는 생각했다. 속죄하는 마음에 대해. 그것이 속죄가 될까라는 의문에 대해. 처음엔, 그래도 브리오니는 유명해졌잖아.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 살았잖아. 그랬기 때문에 그 마음이 속죄가 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계속 그녀를 떠올리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수 십년을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살았을까. 그 힘들었던 매일 매일을, 단지 유명해졌다는, 잘 살고 있다는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살아도 사는게 아닐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람이라, 때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이젠 내 마음이 상하는 것보다는 그 아이의 마음이 상하는 것이 두렵다. 때론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때론 잘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브리오니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브리오니의 잘못된 판단과 나의 잘못된 판단이 표면적으로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속죄의 마음은 같은 것이 되었다. 나의 작은 실수가 한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는 모르는 것이니까. 한 때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이 아이들에게 얼마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영향력이 있기는 한걸까, 한참을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10년 후에, 20년 후에 그 아이가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며 좋은 생각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된거라고. 그것을 위해 교육하는 거라고. 그 말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되내었었다. 지금도 잊고 살 때가 많지만, 그래도 가끔, 회의 같은 것이 들때에는 그 말을 떠올린다. 그래. 이 아이의 인생에 작은 파도라도 만들어주자. 이 작은 파도가 큰 파도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그걸로 만족하자. 
 

  어떤 드라마가 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라서, 몇 번이고 봤다.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의 가해자의 여동생과 피해자의 오빠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여자는 남자에게 말한다. 자신의 내일은 오빠의 죄값을 치르는 거라고. 남자는, 피해자의 오빠는, 잊혀질 수 있을거라고 말해보지만, 여자는 절대 그럴 수는 없다고, 그래서는 안된다며, 평생을 오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살겠다고 한다.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하면,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기도 해서 다행이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후안무치의 인생을 살기도 하잖아. 누구는 그렇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는게, 참 불공평하기도 하지만, 어떤 인생이 결과적으로는 떳떳한 인생이 될까. 힘든 마음으로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면 조금은 속죄되었다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창가에 서서 피곤의 파도가 내 몸에 부딪히며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빼앗아가는 것을 느낀다. 발 아래 바닥이 물결치는 것만 같다. 밝아오는 새벽의 회색빛 속에 사라진 호수 너머로 공원과 다리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로비가 경찰차에 실려갔던 그 길고 좁은 차도가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보인다. 연인들을 살려두고 마지막에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나약함이나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베푼 친절이었고,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그들이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큰 이기적이지는 않다. 그럴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아직 그만큼은 아니다. 내 생일 축하 파티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려낼 힘이 있다면... 아직까지 살아 있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서재에 나란히 앉아 <아라벨라의 시련>을 보며 미소 짓는 것으로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선 잠부터 좀 자야겠다.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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