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빴다. 수행평가 마감일자도 다가오고, 시험 문제도 출제해야하고, 수업 진도는 아직도 남았다. 마음이 분주한 탓인지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집에 가면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었다. 후. 쉼이 필요하다.
얼마 전, 티비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유럽 사람들은 책을 읽는 이유가 달라요. 저녁 식사 시간에 이야기를 하기 위해 책을 읽죠.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책을 읽지 않고 그 책에 대해 자신의 견해가 없으면, 책을 읽지 않고 생각이 없는 것이 들통나버리니까, 그렇지 않기 위해 책을 읽어요. 우와 멋지다. 저녁 식사 시간에 책 이야기를 한다니, 그런 문화라니! 그 말이 좋아서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뒀다. 나도 오빠에게 내가 읽은 책을 이야기하고, 그 느낌을 말하지만, (오빠는 그런 내 이야기에 다행이도 귀를 기울여주고, 칭찬해준다. 책을 읽는 사람이 자기 주변엔 없다며 자신의 감성을 채워준단다. 훗.) 그런 문화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책에서도 독서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유럽 사람들의 책에 대한 생각은 정말이지 참 좋고, 또 한편으로는 참 부럽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놀란 것은 사람들이 책을 매우 열심히 읽는다는 점이다. 아마 겨울이 길어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독서에 매우 큰 의미와 가치를 두는 듯하다. 집의 서가가 얼마나 충실한가로 그 사람의 가치가 판가름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구에 비해 대형 서점이 많고, 아이슬란드 문단도 활발해, 1955년에는 할도르 락스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대표 장편소설 <독립한 민중>을 라디오에서 몇 주에 걸쳐 낭독했고, 그 시간에는 전 국민이 말 그대로 라디오 앞에 못박혀 있었다고 한다. 버스가 운행을 멈추고, 어선도 조업을 중지했다. p.27
식사중 "요새 사업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니, "여기 독자들은 대부분 핀란드어 번역판이 나오기 전에 영어로 먼저 읽어버리기 때문에 번역 출판 사업이 상당히 어려워요"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스웨덴어 책을 읽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그들은 핀란드어에 긍지를 느끼고, 조금이라도 많은 책을 핀란드어로 번역해 출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건전한 사고 방식이다. 응원하고 싶다. p.145
이 책에는 여러 나라들이 나오는데, 나는 핀란드에 포스트 잇을 가장 많이 붙였다. 특히, 헤멘린나의 숲과 호수. 책을 읽으며 안 사실은, 하루키는 음악을 좋아해 어떤 나라에 가면 꼭 그 라의 음악을 LP나 CD로 사서 듣는다. 나는 그 행동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도 해외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모국어로 된 CD를 한 장 사서 들어보는 것을 일종의 습관처럼 해봐야지 다짐했다. 사실, 나는 해외 여행을 가면(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서점엘 꼭 가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라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었는데, 음악은 다르잖아! 하루키의 또 다른 책에서 핀란드가 나왔던 것이 생각났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 책 제목을 내가 외우고 있다니!) 그 때 그 책을 읽으며 핀란드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다시 한 번 찾아봐 읽어봐야지. 그리고 항상 장바구니에 넣어놓았던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생각났다. 이번에 구매했다. 아. 핀란드라. 어떤 나라일까.
헤멘린나가 있는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실로 드넓고 곧은데다 교통량이 극도로 적다. 주위에는 온통 푸른 숲뿐이라 나무들 말고는 달리 볼만한 것도 없다. ... 나는 헬싱키 시내에서 산 핀란드어판 올디르 록 CD 몇 장을 카스테레오로 들어며 유유자적 드라이브를 즐겼다. 핀란드어로 듣는 로이 오비슨의 <Oh, Pretty Woman> 커버곡은 꽤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정말로. p.148
핀란드는 전반적으로 한가로운 북유럽권 나라 중에서도 유독 한가로운 나라다. 그다지 화려한 부분은 없지만 시간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부드럽다. 음식도 꽤 맛있다. 좋은 곳입니다. 한번 가보면 당신도 핀란드 팬이 될지 모른다. 운 좋으면 숲에서 우연히 스너프킨을 마주칠지도 모르고. 물론 농담이지만. p.155
책을 읽으며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던 대목이다. 비가 오지도 않는데, 비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일본 구마모토의, 2층, 큰 창문이 난 반듯한 다다미 방.
당시로서는 드문 2층 건물. 엄청나게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널찍한 객실이 서재처럼 꾸며져 있다. 앉은뱅이책상 말고는 가구가 거의 없다. 1층에서 펼쳐지는 일상적인 가정생활과 격리된, 엄연한 독립 공간이다. 창가에 놓인 책상 앞에 앉으면 파초가 우거진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그 위로 조용히 장맛비가 내린다. p.225
여행은 정말이지 '내'가 있어야 여행이다. 그저 여기저기 가기 바쁘고 보기 바쁜게 아니라,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생각을 하며 나만의 추억을 만드는 것. 하루키는 그렇다. 여행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곳을 가고, 자신의 생각을 하고,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결국 그 곳을 오롯이 자신의 곳으로 만든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고 물어보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에 가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지만 잘 잊어버리게 되는 것을, 또 이렇게 잊지 않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하루키.(하루키의 말투를 따라해 봄. 흐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충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p.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