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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마당을 나온 암탉


  그 동안 영화를 많이는 아니어라도, 조금은 보았는데, 블로그를 한 지는 참 오래됐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마지막이었으니.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겨울의 영화였으니.

  여행을 갔다. 부산엘 갔고, 서면이라는 곳엘 갔지만, 우리는 둘째날이 되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너무 피곤했다. 쉴 곳이 필요했고 쉬면서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 중에는 영화를 보는 일이 있었다. 휴가를 내려온 우리에게 안성 맞춤인 영화가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그리 무겁지도 않고, 나의 눈을 즐겁게 해 줄수 있을 것만 같은. 여행이라는 것은 나를 아주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라하는 것이 맞겠다. 한 번쯤 일탈을 꿈꾸지만, 그 일탈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이라지만, 그 일탈은 일탈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진짜 나인 것만 같다.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대견스러운 일일지도, 아니면 아주 실망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나의 저질 체력. 나를 발견하고 싶어도, 나를 발견하게 될 때쯤에, 이 저질 체력은 항상 문제가 된다. 무언가를 하려 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점점 몸소 체험하고 있는 '사실'이다. 운동을 해야겠다. 이번엔 정말이다. 아무튼, 저질 체력의 일련의 예로 우린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았다. 어쩌면 그게 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나는 그 저질 체력 속에서도 <고지전>을 고집했으니, 어쩌면 그건 내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행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사랑'을 생각했었다. 사랑. 사랑이 무엇일까. 나는 사랑을 해 본적이 있다고 이제껏 줄곧 말하고 다녔었지만, 정말 내가 사랑을 해 본 적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이 영화를 본 뒤, 나는 내가 어떤 이를 사랑하고 있구나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그 순간에는 언제나 모성애라는 것이 들어있었다. 내가 저 사람을 반드시 지켜줘야겠구나, 내가 저 사람 곁에 있어줘야겠구나라는 모성애. 그러고 보니, 옛날, 친구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는 어떤 사람하고 결혼을 할 것 같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한참을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었다. 내 모성애를 자극하는 사람. 한참을 생각한 이유는 왠지, 결혼에 모성애라는 감정이 섞여 들어간다고 하면, 난 내 남편의 엄마가 되는 것 같은, 로맨틱을 꿈꾸던 어릴 적의 나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상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때 나의 감정을 설명할 단어는 모성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만약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 모성애 때문일 것이다. 정말 잘나고 똑똑하고 능력있어서, 그래서 내가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나의 물리적 안정과 심리적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라도, 그 사람에게 나의 모성애를 자극할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난 그 이기적인 결혼을 결심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사람도, 비록 너무나 저질인 체력을 가졌지만 이런 나에게도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그 무언가가 그 사람에게 존재해야만, 나는 결심할 것 같다. 내가 이 사람 곁에 평생 있어줘야겠구나. 라고.  

 












감독 김한민
출연 문소리 유승호 박철민 최민식

OST 바람의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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