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네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1-7)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18-21)
예배를 드리기 전, 기도를 한다. 오늘의 예배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 하늘 문이 열리고 내 마음 문이 열려서 주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성령이 함께 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 기도를 한다. 그렇게 항상 기도를 하지만, 내 마음의 정함의 정도에 따라 그 기도가 간절해지기도, 안 간절해지기도 한다. 회개의 시간을 넉넉히 가지지 못한 채. 즉, 그 일주일을 살면서 기도가 뜸 했다던가, 주일 아침 늦잠을 자서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놓쳐버렸다던가 했을 때는, 그래서 나의 죄를 모두 고백하지 못했을 때는 예배에 대한 나의 기도가 간절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저 왔다 돌아가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때엔, 교회의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속이 상하기 시작이다. 내 손에 들려진, 내 등에 짊어진, 내 발에 묶여진 그 그릇들에서는 덜그렁 덜그렁, 시끄러운 빈 소리뿐이다. 그 덜그렁 소리에 나는 속이 상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바보같은 나 때문에 울기 시작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뒷북치는 회개의 기도가 시작된다. 주님을 예배하는 그 시간을 사모하지 못한 나를,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덥석덥석 받아오지 못한 나를, 이렇게 뒤늦게야 속이 상하는 나를 고백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토닥토닥, 내 호주머니에 귀한 축복의 한 줌을 찔러 넣어주신다. 비록 들고 간 그 그릇은 시끄러운 빈 소리들 뿐이지만, 나는 슥삭슥삭 눈물을 닦고 그 호주머니의 축복을 꺼내어 보며, 또, 주님을 생각하며, 이젠 그러지 않아야지 다짐한다.
오늘은 전자의 날이다. 아침에 깨어서 바로 엎드려 예배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교회로 가는 동안에도 혹시 내가 어젯 밤, 내가 미처 고백하지 못한 죄가 있나 찾아서 고백했다. 또 성가대 연습을 하기 전 통성으로도 오늘 예배를 위하여 기도했다. 그리고 성가대 연습을 하는데, 나의 피아노 소리가 이상했다. 주눅든 소리처럼, 힘이 없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는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님께 힘 있고 자신있는 찬양을 해야 한다. 힘 있고 자신있는 연주를 해야 한다. 이렇게 주눅든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면 안된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건반을 힘껏 눌렀다. 나의 찬양을 들으시는 주님을 향해 건반을 꾹 꾹 눌렀다.
주님을 날 사랑하시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예전 그 날에 주님은 해결해 주셨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났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단 한번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 놀라운 기적이다. 그 기적을 생각할 때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몰랐던 나를 보여주셨다. 그것은, '그 날' 이후로 나의 상태는 '주님은 날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즉, '주님은 날 사랑하신다'가 아니라 '주님은 날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란 말이다. 주님께서 날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 주님께서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주님은 이런 나에게 오늘, 말씀하셨다. 진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과거의 일은 모두 잊어버린다고,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결코 과거의 일이 나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고. 두려워하고 있느냐고, 그것은 과거가 나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나를 구속하셨고 나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나는 주님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신다고, 이전의 일과 옛날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이젠 주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나는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주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오직, 감사와 찬양을 하라고.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것이다. 주눅든 모습이 아닌, 저 뒤에서 주님이 은혜주시기만 기다리는 모습이 아닌, 담대히 뚜벅뚜벅 제일 앞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걸을 것이다. 물론, 나의 허물로 인해 쭈볏쭈볏 거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유다가 아닌 베드로처럼, 담대히 어깨를 펴리라. 나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며, 주님은 나를 최고로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할 것이다. 매일 매일 한 시간에 한 번씩 생각해서 내 마음과 생각 속에 깊이 새겨둘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씀의 끝자락에 주님이 나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왜, 왜라는 의문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았었는데, 오늘 주님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은혜와 축복이 나에게로 오려면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은혜와 축복이 콸콸 쏟아져 들어 올 길이, 그 길이 뻥 뚫려 있어야 한다는 것. 길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은혜와 축복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나에게로 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님은 그 길을 닦아 주셨다. 나에게 은혜와 축복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이왕이면 많이, 빠르게 축복이 들어올 수 있는, 뻥 뚫린 길을 닦아 주셨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다 뒤엎어져 버린 흙바닥을 보며 불평과 좌절을 느꼈었다. 그런 바보같은 나에게 주님은 맛나와 메추라기로, 구름과 불기둥으로, 나를 매일 매일 이끌어주셨다.
주님의 은혜에 갚을 길이 없다.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나는 이제 산다.
항상, 너무나 놀라우시고 너무나 선하시고 너무나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겨울에도 너무나도 따뜻하신 우리 주님 위해 나는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