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yodasol 2017. 7. 13. 15:28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저 낯선 몸뚱아리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허망한 존재에게 인생이 바쳐졌구나 싶어요. 저는 저 사람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바이털 사인이 꺼지고 더이상 저 육체로부터 아무 반응도 받아오지 못한다면, 즉 아빠가 마침내 의학적으로 사망한다면 한동안은 좀 막막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하게 돼요. 뉴욕에 있었다던 그 두 사람,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에 대해서요. 어젯밤, 이제 반쯤은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어요. "아빠 나 다시 담배 피운다." 아빠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가 없는데, 어쩐지 희미하게 웃는 거 같기도 했어요. p.41

 

  언젠가 엄마와 억새태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산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큰 불이 났었는데, 나와 엄마는 정말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다. 너무 무서워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엄마는 엄마와 나만의 기억(우리 가족 중에서)이라고, 먼 훗날, 우리 이렇게 무서운 일도 같이 겪었잖으냐며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라고 나를 애써 위로하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랬다. 어릴 적부터 항상 무슨 일이 있을 때 가족 모두가 있었고, 여행도 다른 가족과 함께 가는 일이 많았다. 엄마와 나, 둘뿐인 기억은 거의 없다. 물론 그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진 못했지만, 엄마와 나만 아는,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그것을 우리는 가지게 된 것이다.

 

  오직 두 사람만이 있는 그런 순간들, 그런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 좋은 시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간도 있겠지만, 그런 순간들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