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식당 / 박정석

yodasol 2014. 3. 23. 23:55

  

 

열대식당

박정석 지음

시공사

 

 

  추울 때에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이다. 박정석의 <열대식당>. 이 책은 더운 동남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 대해, 특히 그들의 음식에 대해 써놓은 책이다. 그래서 따뜻하고 습한 곳이 그리워질 때 읽고 싶었다. 봄이 찾아오기 전, 꽃샘추위로 겨울이 작별을 고하던 3월에,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네 개의 국가가 나온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은 언젠가 꼭 한번 가보자 했던 곳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자 더욱 그러해졌다. 태국의 음식은 싸고 맛있으며, 그것은 어느 길거리에서나 어느 가게에서나 그렇다 했다. 1인분의 양이 적은 것이, 오히려 다른 태국 음식도 먹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말할 정도니, 책장을 넘기며 계속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후아. 평범한 겉모습과는 달리 폭탄처럼 강력한 맛이다. 뜨거운 불 맛과 이보다 더 거센 고추의 화끈한 위력이 입안 전체에 확 퍼져나간다. 오래간만의 자극적인 맛에 침이 폭발적인 기세로 터져 나와 침샘 부분에 얼얼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다. 비싼 재료를 사용할 수 없는 저렴한 식당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재료 간의 조화다. 미지근한 타액과 뒤섞이며 고추의 매운 맛, 바질의 달착지근한 맛, 피시소스의 짠맛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목을 타고 넘어간다. 마실수록 목이 마른 소금물처럼, 첫술이 그다음 한 술을, 다시 한 술을 부르는 격이다. 어서 다시 한 입, 그리고 또다시 한 입. 크지 않은 접시는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아득한 곳에서 대양을 닮은 포만감, 나른한 만족감이 파도처럼 뭉클거리며 밀려오는 것도 잠시, 곧 거품처럼 사라져간다. 태국 음식의 1인분은 한국보다 양이 작다. 다행이다. 이제 시작이고 끝은 아직 까마득하게 멀리 있다. 방금 도착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그러기를 바란다. 여기는 크룽텝. 방콕. 아시아의 넘버원 쾌락 도시. 순전히 먹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p.14

 

  이산 음식들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은 거리의 노점이다.  

  " 아니, 길에서 사 먹는 것은 위생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확실한 것 하나는, 수많은 태국인들이 오늘도 삼시 세끼 길에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연과 소음이 자연스러운 향기와 배경음악인 듯 거리에 놓인 식탁 앞에 앉아 평온한 얼굴로 식사하는 사람들. p.74

 

 

  베트남의 음식도 맛있어 보였다. 베트남은 쌀수출국답게 밥으로 만든 음식이 많다. 껌땀, 껌디아, 껌찐. 각각 덮밥, 볶음밥, 백반이다. 그리고 베트남하면 떠오른 라이스페이퍼로 만든 반꾸온(월남쌈)과 베트남 쌀국수. 작가는 베트남 음식은 태국의 음식보다 미묘하고 우아하다고 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라이스페이퍼로 싸놓은 음식들은, 마치 시스루의 느낌이랄까.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모양새의 음식이다. 베트남 음식이 이웃나라의 음식들과 달리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인 것 같다. 입으로 가져가지 이전에 눈을 감동시킨 음식. 라이스페이퍼는 마치 여인의 하얀 베일처럼 가련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p. 124

 

 

 의외로 베트남 사람들은 맥주와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게다가 커피는 드립커피다. 베트남에서 드립커피라니. 1인용 커피메이커인 핀이라는 게 있단다. 거기에 커피가루를 넉넉히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시간이 지나면 커피가 만들어진다. 작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맥주도 먹는 방법이 특이했다. 냉장고를 갖춘 가게가 드물어 맥주를 차갑게 하기 위해 잘게 부순 얼음을 유리잔에 채운 후 맥주를 부어서 내준다고 했다. 얼음이 띄어져있는 맥주는 1분만 지나면 확실히 차가워진다고 했다.

 

 

  시간만 흐르면 된다니. 느리지만 확실하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랬으면 좋겠다. 은빛 바닥에 검고 뜨거운 액체가 맺히더니 방울방울 떨어진다. 손가락에 잡힐 듯 진한 향기가 피어오른다.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시라.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커피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느려져 똑똑, 똑, 똑. 마침내 완전히 멎게 될 때까지. 이제 다 되었다. 다 내려왔으니 마셔도 된다. 드립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 잔은 겨우 반이나 찼을까 말까 할 정도다. 이것이 베트남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방식이다. 에스프레소처럼 강한 맛의 커피. p.147

 

  날이 어두어지면 거리 여기저기 술집들이 문을 연다. 꼬마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 남자들. 각종 꼬치구이와 생선포를 바짝 말려 구운 것. 젓국으로 버무린 파파야 샐러드 등 소박한 안주와 함께 즐기는 휴식의 시간이다. 떠들썩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옆 테이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구두닦이 청년이 흙이 떨어지든 말든 탁탁 구두끼리 부딪히며 호객하면서 지나가고, 주인은 비아호이를 넘칠 듯 채운 유리잔을 나른다. 식용 당기는 냄새를 풍기며 돼지갈비가 구워지고, 하얀 김과 함께 핫팟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풍요로운 밤이다. "참! 판! 참!(단숨에 마셔요!)" p.159

 

 

  미얀마는 군부의 지배하에 있는 국가에다가 아직 발전이 거의 되지 않은 곳이라 했다. 시장을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정말 조선시대의 시전거리 같았다. 미얀마 부분을 읽으면서는 관광지라기하기엔 쓸쓸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그곳에도 주목할 만한 먹을거리가 있었다. 튀김과 망고. 둘 다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다. 튀김은 여기서도 마음만 먹으면 실컷 먹을 수 있지만, 비싼 망고는 그럴 수 없다. 언젠가 동남아시아 쪽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망고를 잔뜩 사서 호텔 냉장고네 넣어놓고 매일 매일 까먹으리라.

 

 

  늘 튀기니 잘 튀기는 것일까. 버마 길거리에 즐비한 튀김집들은 뜻밖에도 훌륭한 맛을 낸다. 1달러면 듬뿍 살 수 있다. 신문지를 맵시 있게 접어 만든 사각봉투에 가득 넣어준다. 얼음처럼 차가운 타이거 맥주 한 캔을 곁들여 느지막한 시간에 숙소에서 먹어치우는 튀김 한 접시. 아직도 뜨겁다. 기름기가 그리웠던 입안에서 고소한 튀김이 아삭아삭 소리와 함께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p. 290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중국의 남쪽, 인디아의 동쪽, 당신이 동남아시아에 있는 한 그런 건 근심할 필요가 없다. 무덥고, 조촐하고, 너그러운 땅이다. 항상 여름. 그게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어딜 가도 얼어 죽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고 굶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들은 다정하고 먹을 것은 흔하다. 언제나 여름. 바깥세상에 얼음 같은 눈보라다 몰아친다고 해도. p.356

 

 

  특히, 태국과 베트남에 가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