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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서약

 

 

 

 

  "나에게도 이론이 하나 있다. 순간에 관한 이론이다. 순간이 중요하다. 내 이론은 이 중요한 순간이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꾼다는 것이다. 결국엔 우리가 누구인지 결정짓는다."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너와 나의 순간에 대해.

 

  내 옆에 바짝 붙어 미안함을 전했던 그 순간. 홍합 껍데기를 발라주던 그 순간. 노란 불빛 아래에서 미소짓던 그 순간. 늦은 여름밤 한강을 걸으며 또 만나자고 말하던 그 순간. 편의점 앞 계단을 성큼 뛰어오르던 그 순간. 나의 구두를 보며 예쁘다고 말해주던 그 순간. 내일 뭐해요, 물어봤던 그 순간. 흰색 티셔츠를 입고 나왔던 그 순간. 나의 어깨를 잡았던 그 순간. 친구의 문자를 받았던 그 순간. 철없는 문자를 보냈던 그 순간. 놀이터에서 전화하던 그 순간. 청주에서 올라오며 전화했던 그 순간. 양재역 앞에서 어색하게 만났던 그 순간. 양재역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던 그 순간. 지하주차장에서 다시 만났던 그 순간. 손을 잡았던 그 순간.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그 순간.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새벽을 기다리던 그 순간. 편지를 건낸 그 순간. 너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그 순간. 그 아침,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던 그 순간. 

 

  이 순간들에 대해. 

 

  나도 레오의 이론에 동의한다. 순간에 관한 이론. 이 중요한 순간들이 나의 삶을 통째로 바꾸고, 결국엔 내가 누구인지 결정짓는다는 것에. 

 

  물론, 좋았던 순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프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고마웠다. 그 순간들마다 나는, 너무 고마웠다. 미안하다 말해주고, 나를 위해 참아주고, 져주는 그 일들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를 위해 그 힘들고 어렵고 자존심 상하는 그 일들을 해주어서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꼭 알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를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우리의 이 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고 설레인다는 것을. 그와 함께한 순간들이 모여, 이렇게 내 삶이 통째로 바꾸어지며, 나를 결정지어 간다는 사실을.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갈 수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생각한다. 그를 더욱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야지. 그래서 꼭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야지. 손끝이 저릴만큼 아름답게,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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