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를 떨어뜨려 망가져 버렸다. 나는 원래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잘 드는 아이이다. 마른 체격에다가 하는 것도 보면 뭔가 어설프게 행동한다고 하지만, (내가 요리를 하면, 소꿉놀이하는 것 같다고 한다.) 난 그렇지가 않다. 대학교 1학년 때, 하숙집 방을 옮긴 적이 있다. 혼자여서 좋았지만 가끔씩 출현하는 왕곤충들 때문에 생판 얼굴도 모르는 어떤 대학원 언니와 방을 함께 쓰기로 하고는 3층에서 2층으로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3층과 2층은 좁다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티비, 책상, 서랍장을 날랐다. 물론 혼자 옮길 수는 없었고, 하숙집 아줌마 아저씨랑 같이 끙끙대며 날랐다. 그 때 내가 사용하던 티비는 중간 사이즈의 티비였고 혼자 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나는 그 티비를 혼자서 번쩍 들고 그 좁다란 계단을 위태위태하게 내려갔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그 티비를 들고 내려오는 나를 보시고 '아이고'하며 탄성을 지르셨다. 조그마한 애가 티비를 번쩍 들고 내려오는 모습에 아주머니는 적지 않게 놀라신 모양이셨다. 넌 어디가나 잘 살겠다며 칭찬 비슷한 것을 해 주셨는데, 그 이후로도 아주머니는 그 티비들고 내려오는 내 이야기를 몇 번 더 하셨다.
그렇게 난 무거운 것을 잘 드는 아이다. 손끝에 힘이 있어서 그런지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일도 별로 없다. 그런데 나는 오늘 복사기를 떨어뜨렸다. 분명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였고 그닥 무겁지도 않았다. 무거워서 떨어뜨렸다 하더라도 떨어진 높이는 아주 낮았다. 그냥 쿵하고 떨어뜨렸으면 그렇게 박살나지는 않았겠지. 왜 굳이 그것은 꼭지점 쪽으로 떨어뜨렸는지, 왜 하필 그렇게 떨어졌는지. 꼭지점과 맞닿은 세 모서리와 세 면은, 그 꼭지점을 중심으로 산산히 분해되었고, 그 속의 복사기 내부는 훤히 들여다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개의 떨어진 파편. 분명 이 파편은 어딘가에서 부서져서 나온 파편임이 그 파편의 불규칙하게 깨진 부위가 말해주고 있었다.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쪼그려 앉아 얼굴을 양팔에 파묻고 말았고, 지휘자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이냐며 달려오셨다. 산산조각난 복사기 앞에서 난, 어떡해요. 어떡해요. 죄송해요.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고, 지휘자 선생님께서는 괜찮다며 더 좋은 거 사라고 하시는 거라고 계속 괜찮다고만 하셨다. 옆에서 집사님께서는 요즘엔 본드가 좋은 것이 많이 나온다며 본드로 다 붙이면 된다고 농담을 던지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하지만 난 괜찮지 않았다. 또 그 병이 도지기 시작했고, 난 예배가 끝난 이후로 며칠 동안 계속 그 병의 후유증에 시달린다. 남의 집 물건 부수고 온 느낌. 왜 하필 내가.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잘 드는 내가 왜.
이런 일들의 원인도 알고 싶고, 내 병도 고치고 싶다.